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재인/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문단 편집) === [[박근혜]] === [[파일:NISI20121216_0007479122_web.jpg]] ---- 문재인이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때는 2012년 4월 11일에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당시 그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그 때부터 이미 [[민주통합당]]의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라는 그 이미지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노무현 탄핵 심판]] 당시에도 변호인단을 꾸려서 승소를 이끌어[* 당시 상대 측의 보스가 바로 그 '''유명하고도 악랄한 [[법꾸라지]] [[김기춘]]'''이었다! --물론 탄핵 자체가 완전히 억지에 가까워 통과될 확률이 거의 없긴 했지만...-- 탄핵소추인단(탄핵을 주장하는 역할. 검사라고 보면 된다)은 법사위원들로 구성되는데 이 당시 법사위원장이 김기춘이었다. 즉 탄핵소추인단장이었단 소리. 이때 김기춘은 노무현을 사이코라고 지칭하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12년 후 정반대의 위치가 되어 김기춘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문재인은 탄핵된 박근혜의 뒤를 이어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직무 복귀를 이끌어냈고 2차례의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풍부한 경험 덕에 청와대 실무에 밝다는 점에서 또한 대권 잠룡으로 거론된 것이다. 특히나 [[이명박 정부]]의 잇단 실정과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이 사실상 [[이명박]]으로부터 정치 보복성 사법 살인을 당했다는 인식이 친노 성향의 국민들 전반에 팽배해 있었기에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이 더욱더 대권 잠룡으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손학규가 이 당시 민주통합당에서 문재인과 경선을 거치긴 했으나, 손학규는 신한국당-한나라당의 보수 정당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세력이 약했기 때문인지 결국 당시 친노의 좌장이었던 문재인에게 밀렸던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의 경우 대권 주자가 되려면 오히려 한나라당에 잔류해서 이명박 및 친이계와 같은 배를 타고 이명박 정부 시절 MB의 레임덕이 시작됐을 때 잽싸게 친이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친박과 혈투를 벌여 이기는 쪽이 오히려 대권 주자로 낙점됐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홍준표는 뚜렷한 계파가 없이 정계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2017년에는 친박의 몰락으로 비박의 구심점에 있던 친이계의 지원을 받고 무주공산이 된 자유한국당의 대권 주자로 올라섰고, 결국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것을 감안하면 손학규의 선택은 늘 한발짝씩 박자가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잔류해 기회를 보지 않고,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동했다가 이후 대권 주자 경선 3번에서 모두 패배해 대권 주자로 낙점되지 못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친이]] 정치인 중 한 명인 나경원이 박원순에게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디도스 의혹이 불면서 당권에 근접해있던 친이계 및 홍준표 전 대표가 당원들의 반발에 의해 사퇴하게 되고, 친이계의 실세중 한 명[* 다른 한 명은 당연히 [[이재오|이 분]]이다. 다만, 이 당시에는 이미 이상득의 권력이 약해지고 이재오가 친이계의 제일 실세가 된 시점이었다.]인 [[이상득]]이 부패 혐의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친이계의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게 되며, 반대급부로 [[친박]]계가 득세하였다. 2011년 말에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로 취임했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면서 점차 당 내 계파 싸움에서 친박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친이계가 몰락하고 친박계가 득세하면서 사실상 여당에서는 박근혜가 유력한 대권 후보로 낙점된 때였다. 그리고 2012년 이 해는 바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지는 해였다. 그 때문에 2012년 4월 11일에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질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예비전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정권교체 실현 여부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선거였다. 그렇기에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와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의 맞대결로 굳어졌다. 당시 말기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가 급속도로 [[레임덕]]을 맞았다고 분석됐기에 문재인을 위시로 한 야권의 승리로 전망되었으나 선거 막판에 터진 [[김용민(1974)|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정통민주당]]의 [[고춧가루]] 공세 등의 악재가 겹치며 결국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 확보로 결과가 나왔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박근혜의 승리로 돌아갔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두 번째 진검승부는 바로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였다. 정계 입문 14년 차의 베테랑 정치인이었던 박근혜와 정계 입문 8개월 차의 신흥 정치인이었던 문재인의 맞대결이 된 것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7명의 후보 중 원내 정당 소속의 후보는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단 3명이었던데다 이정희마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사퇴하였고 박근혜, 문재인과 함께 제3세력으로 기대되었던 [[안철수]] 또한 사퇴하면서 결국 이 선거는 사실상 박근혜 vs 문재인의 맞대결로 압축되었다. 문재인은 대통령 선거 후보였지만 정계에 입문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참이었고 박근혜는 이미 정치 경력만 15년에 달하는 기성 정치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출구 조사 결과 50.1%:48.9%로 초박빙의 접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역시 정치 경력 1년도 안 된 정치 신인이 상대하기엔 경력 15년 차 기성 정치인의 벽은 높았고 실제 개표 결과 51.55%:48.02%으로 출구 조사 때보다 표 차가 더 벌어져 108만496표 차이로 패배했다. 이렇게 두 번째 맞대결이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 또한 박근혜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때 이슈가 된 사건이 2017년도에 다시 수사가 진행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이후 [[박근혜]]는 당선되고도 상당한 후폭풍이 있었다.] 그래도 정치 경력으로는 햇병아리라 할 수 있던 문재인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거물급인 박근혜에 맞서 박빙의 결과를 낸 것만으로도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문재인은 일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남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문재인이 다음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갔다.[* 실제 문재인과 친노 세력은 2014년 중반까지 [[민주통합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당시 당 대표는 비노 세력이었던 [[김한길]]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 초기에는 김한길과 안철수가 당 대표였다.] 그러나 2015년 연말에 당 내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안철수와의 갈등을 풀지 못했고 이는 결국 제1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때문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대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2016년 초에 폭풍 같은 인재 영입과 당 내 쇄신을 단행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희망을 이어갔다. 잇단 정부의 실정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박근혜가 주문한 '''국회 심판론'''과 야당이 주문한 '''정권 심판론'''의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확보해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오르면서[* 물론 나중에 새누리당이 무소속 당선인들을 받아들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을 넘어 원내 1당이 되긴 했지만 이걸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3번째 맞대결 만에 문재인이 박근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 선거의 승리는 그가 다시금 대권 잠룡으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 반사이익을 상대 정당 소속이자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와 진검 승부를 했던 문재인이 흡수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박근혜 탄핵]] 이후 그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게 되었다. [[홍준표]]와의 회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형량을 마치면 90세가 될텐데 죽어서 나오란 말이냐는 질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렇게 된 건 나도 안타깝다. 정치 보복 문제는 [[청와대]]가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예 [[특별사면]]을 하지 않겠다는건 아니라는 희망은 남긴 듯 하다. 2021년 12월 24일, 임기 말엽의 문재인은 [[성탄절]] 특별사면 명단에 박근혜를 포함시켰다. 결국 탄핵당하고 구속된 자신의 전임자이자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기도 했던 박근혜를 자신의 결정으로 풀어주게 되었다. 사실 막연히 문재인이 박근혜 탄핵의 주역 중 하나이고, 박근혜 재판 때 문재인이 대통령이었으니,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정치 보복을 한 것이고, 이 때문에 박근혜가 문재인을 증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우 성향의 노인들은 이런 소문을 믿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탄핵 정국에서 문재인은 온건한 입장이었다. 다른 정치인들이 내각 총사퇴를 주장할 때 문재인은 특검을 주장했고, 다른 정치인들이 무조건 하야를 주장할 때 문재인은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했고, 다른 정치인들이 다 탄핵을 주장할 때 동참한 정치인이 문재인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한 달이 지나서, 다른 정치인들이 탄핵 후 사법 처리를 당연시할 때까지도 문재인은 '''명예로운 퇴진을 하면 퇴진 후에도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는 최대한 지켜주겠다'''라는 정도의 온건파였다. 박근혜 사면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박근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민주진보 계열의 주요 정치인 중에서 가장 자신에게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사람이 문재인이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여권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면을 해준 사람이 문재인이었다. 당연히 박근혜는 문재인이 고마울 수 밖에 없다. 거기에 황교안 권한대행 시절 처음 구치소에 들어와 아무것도 없이 상당한 불편을 겪었는데 오히려 문재인이 이것저것 많이 챙겨줬다.[* 감옥에 처음 들어가서 책상을 달라고 해도 황교안은 전부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이 당선된 후 감옥에 책상 등의 가구들을 들여보내서 챙겨줬다는 말이 있다.] 이러니 박근혜가 사면된 후 메시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유영하 변호사는 '''고맙고 감사하다'''는 의미라고 답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10409571484723|#]] 2022년 3월, 박근혜가 병원 생활까지 마치고 달성군 자택으로 내려가자 문재인은 '''늘 건강하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난을 보냈다. 이에 박근혜는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하시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때도 서로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2015년 당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로 만난 이후 약 7년 만이다. 다만 이후로는 접점이 전혀 없다. 박근혜는 출소 및 퇴원 이후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거의 칩거하며 여생을 보내는 중이고 문재인도 나름 존재감을 보이면서도 은퇴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추후 대통령이 주최하는 전직 대통령 회동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다시 마주칠 일이 있겠지만 아직 그런 일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